신경치료, 엑스레이만으로 판단하지 않아요
"엑스레이 찍으셨는데 왜 또 뭔가를 보시나요?"
치과에서 이런 질문 하시는 분들이 꽤 있어요. 사실 당연한 의문이에요. 엑스레이라는 게 뭔가 다 보여주는 것 같잖아요. 근데 신경치료 판단할 때는 엑스레이 하나로만 결정하면 놓치는 게 생각보다 많아요.
엑스레이가 못 보여주는 것들
엑스레이는 2차원 사진이에요. 치아를 정면에서 납작하게 찍은 거라, 입체적인 구조를 다 담지 못해요.
가장 흔한 예가 치근의 방향이나 개수예요. 상악 대구치(위 어금니)는 보통 뿌리가 3개인데, 엑스레이에서는 2개처럼 겹쳐 보이는 경우가 많아요. 뿌리가 앞뒤로 겹쳐 있거든요. 이걸 모르고 들어가면 신경관 하나를 그냥 지나치게 돼요. 치료가 끝난 것 같은데 또 아픈 이유가 여기 있는 경우도 있고요.
또 초기 치근단 병소(뿌리 끝 염증)는 엑스레이에서 안 보이는 경우가 꽤 있어요. 뼈가 녹기 시작해도 어느 정도 진행되기 전까지는 사진에서 잘 안 잡혀요. 반대로 사진에서 뭔가 보이는데 실제로는 이미 치유 중인 경우도 있고요. 엑스레이는 어디까지나 참고 자료예요.
그럼 뭘 더 보나요?
저는 신경치료 판단할 때 크게 세 가지를 더 봐요.
첫 번째, 증상의 패턴이에요.
통증이 찬 거에 반응하는지, 뜨거운 거에 반응하는지, 자발통(아무것도 안 해도 아픈 것)이 있는지, 두드렸을 때 아픈지. 이 조합이 신경 상태를 굉장히 잘 말해줘요. 찬 거에 잠깐 시리다 괜찮으면 신경이 살아있는 거고, 뜨거운 거에 더 아프고 한참 가면 신경이 거의 포기 단계인 거예요.
두 번째, 구강 카메라로 직접 봐요.
치아 표면에 금이 가 있거나, 치아 색이 변해 있거나, 잇몸에 농이 터진 구멍(누공, fistula)이 있는 경우가 있어요. 이런 건 눈으로 봐야 알아요. 누공 같은 경우는 신경이 이미 죽었다는 증거거든요. 환자분께도 직접 보여드려요. "여기 보이시죠? 이게 뭔지 설명할게요" 하면서요. 숨길 게 없으니까 보여드리는 거기도 하지만, 보여드려야 설명이 훨씬 잘 돼요.
세 번째, 치아 활력 검사(vitality test)예요.
차가운 자극을 치아에 살짝 줬을 때 반응이 있는지 없는지 보는 거예요. 반응이 아예 없으면 신경이 이미 죽은 상태(괴사)예요. 이 경우엔 아프지 않을 수도 있는데, 그렇다고 안 해도 된다는 게 아니에요. 오히려 조용히 뼈가 녹고 있는 경우가 있어서 더 조심해야 해요.
신경치료가 필요한지 판단할 때 제가 보는 기준
솔직히 말씀드리면, "신경치료 해야 해요"를 결정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. 너무 일찍 해도 문제고, 너무 늦어도 문제거든요.
제가 신경치료를 권드리는 경우는 대체로 이래요.
- 자발통이 있거나 밤에 욱신거릴 때
- 뜨거운 거에 반응이 심하고 오래갈 때
- 두드렸을 때 아플 때 (치근단에 염증이 생겼다는 신호)
- 엑스레이에서 뿌리 끝에 어두운 음영이 보일 때
- 잇몸에 누공이 있을 때
- 신경이 이미 죽어서 반응이 없는데 증상이 있을 때
반대로, 단순히 차가운 거에 잠깐 시린 정도라면 신경치료 전에 다른 방법을 먼저 써볼 수 있어요. 레진 수복이나 코팅 처리로도 충분한 경우가 있거든요. 신경치료는 한 번 하면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, 정말 필요한 경우에 하는 게 맞아요.
검사 결과들이 다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그때 신경치료를 권드려요. 하나가 애매하면 좀 더 지켜보는 편이고요. 신경치료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라, 필요한지 판단하는 과정이 사실 제일 중요한 단계예요.